“왜 나지?”
지난 주, 입사 후기를 써 달라는 선배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동기들에 비해 별로 뛰어난 게 없다고 생각하는 저에게 입사 후기를 부탁한 선배의 ‘저의’가 궁금했습니다. 저는 소위 말하는 ‘스펙’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매력적인 스토리의 주인공도 아닙니다. 유일하게 내세울 건 언론사 시험 경험이 가장 풍부하다는 것 뿐입니다.
저는 입사 동기들 중에서 언론사 시험에서 가장 많이 떨어져 본 사람입니다. 따라서 합격 비법(실제로 그런게 있는지도 의문입니다만)을 알려드릴 재간은 없어도, 실패한 경험은 누구보다 잘 말씀드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배가 저에게 이 글을 맡긴 것도 이 때문일 것이라고 믿고 이 글을 적습니다.
지난해 동아일보 수습공채에 지원할 때 저는 ‘이번이 마지막 언론사 시험’이라고 다짐했습니다. 대학 졸업을 미루고 언론사 입사를 준비한 지 1년. 두 차례의 공채 시즌을 보냈고 동아일보 수습 공채만 세 번째였습니다. 언론사에만 지원서를 넣었지만 그때까지 단 한 번도 최종 합격의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자신감은 줄어들었고 불안감만 커져 갔습니다.
시험을 앞두고 그동안 언론사 시험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신 이유를 따져봤습니다. 논술, 작문 문제를 예상하고 해당 언론사가 원하는 답을 쓰려고 했던 게 문제였습니다. 제 예상을 빗나간 문제를 받을 때면 당황한 나머지 글이 꼬였고 신문 사설을 따라 쓴 글은 설득력이 부족했습니다.
출제 가능성이 높은 주제를 위주로 연습하는 것 필요하지만, 그것만 대비해선 곤란합니다. 여러분이 예상한 주제가 나올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작정 언론사의 논조에 맞춰 글을 쓰는 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자신이 소화하지 못한 이야기는 금방 탄로나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동아일보 논술 문제 역시 제 예상을 크게 벗어났습니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주제였습니다. 인용할만한 그럴싸한 논리나 전문가의 글귀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결국 오롯이 제 생각대로 글을 써야 했습니다. 오히려 이게 도움이 됐던 것 같습니다.
면접에서도 예단은 금물입니다. 저는 섣부른 예단 때문에 이미 2011년 동아일보 면접에서 떨어진 경험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면접에 대한 팁을 얻고자 동아일보에 입사한 학교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자기소개서와 시사 이슈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는 선배의 말을 바탕으로 면접을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처음 받은 질문은 “머리를 짧게 자른 이유는 무엇인가?”였습니다. 또 “동아일보를 한 마디로 정의해보라”, “서울시장 보궐선거 다음 날 신문의 1면 제목은?”을 물었습니다. 자소서나 시사와 관련된 질문은 2개뿐이었습니다.
역시나 동아일보 실무평가는 처음이었습니다. 평가 전에 알 수 있는 건 5일간 평가가 진행된다는 것뿐. 구체적인 일정조차 알지 못한 채 10여개 과목을 치러야 했습니다. 당연히 실무평가의 시험 문제를 예상하고 미리 준비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미리 알았다고 한들 짧은 시간 안에 준비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닙니다.
동아일보의 실무평가에서는 여러분이 상상하는 것 이상을 만나게 될 겁니다. 기출문제를 보고 ‘이번에도 이런 문제가 나오겠지’라고 예단하거나 ‘언론사에서 좋아할 만한 사람(역시 실제로 이런 게 있는지도 의문입니다)’으로 연기하려는 건 애초에 포기하십시오. 심신이 극한으로 몰리는 실무평가에선 하루 이틀 만에 본래 모습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게다가 평가위원들은 모두 베테랑 기자들이라 여러분이 감추고 싶은 단점까지 쉽게 간파해낼 겁니다.
언론사 시험에 정답이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답은 없어도 정도(正道)는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장점을 살리는 데 집중하십시오. 지난해 실무평가 첫 날, 한 평가위원이 말한 대로 여러분이 탈락하는 건 단점 때문이 아니라 장점을 충분히 어필하지 못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니 혹시 과목 한두 개를 망치더라도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저는 실무평가 당시 기사쓰기 시험에서 단 한 번도 분량을 채우지 못했습니다. 미국 대통령 선거 토론회 동영상을 보고 기사를 작성하는 시험에서는 내용을 제대로 알아 듣지도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최종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섣불리 예상하지 않고 진심을 다해 준비하신다면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이에 더해 어떤 시험에 들더라도 자신의 페이스를 잃지 않을 수 있는 두둑한 배포까지 겸비하신다면 과거 저와 같은 실패를 겪지 않을 겁니다.
저는 3개월 전 수습 딱지를 떼고 산업부 막내 기자가 됐습니다. 수습 때에는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매일 경험하고 있습니다. 아직 많이 부족한 제가 곧 있으면 후배를 맞이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설레면서도 마음 한 켠이 무겁습니다. 앞으로 선배다운 기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겠습니다.
P.S 제 얘기가 시험을 앞둔 여러분께 실질적인 도움까진 아니더라도 용기를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
[출처] 동아미디어그룹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