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에 대한 갈망조차 생길 틈 없이 빠듯했던 지난 8개월. 막상 수습 공채 공고 기간이 다가오니 반가움과 우려가 동시에 고개를 듭니다. ‘그동안 나 이만큼 PD에 다가섰어요’ 하고 자랑할만한 건 아무래도 떠오르질 않습니다. 여전히 생생하기만 한 실무평가의 순간들, 그리고 정신없었던 입사 초반의 기억들만 가득할 뿐이지요. 그래서 오히려 이 설익은 후기가 여러분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베일에 싸인 실무평가가 가장 궁금할 겁니다. 저는 채널A의 실무평가가 ‘사람’을 많이 본다는 얘기를 전부터 익히 들었습니다. 그리고 실무평가 첫 날부터 그것을 여실히 체감했습니다. 현직 PD선배가 이틀내내 평가요원으로 함께하는 것도 모자라, 일 대 일 마크하듯 지원자 개개인에게 붙다니요. 지원자로선 참 고마우면서도 혹독한 방법이었습니다. 주어진 미션들을 빠르고 완벽하게 수행해야 한다는 강박과 잘 보여야 한다는 압박이 매순간 공존했기 때문입니다. 선배들의 눈은 지원자의 ‘모든 것’을 봅니다. 입사 후, 당시 평가단이셨던 선배님으로부터 저의 어떤 부분까지 주목했었는지를 듣고는 깜짝 놀랐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나 공부하기’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실무평가에선 숨기거나 ‘~한 척’ 할 틈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내보이게 됩니다. 영원할 것 같은 압박감도 시간과 함께 흐려집니다. 지원자들 사이에 형성됐던 긴장감도 동료애를 넘어 미묘한 전우애로 점점 바뀌어 갑니다. 그때부터는 하나의 목적을 갖고 협력할 때 발현되는 개개인 고유의 캐릭터가 드러나기 마련이지요. PD의 창의력, 기획력, 마음가짐 따위를 연구하고 준비할 필요 없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 생각하는 방식, 잘 알고 잘 하는 것을 자각하는 공부가 실전에서 훨씬 큰 무기로 쓰일 겁니다. 합격여부와 무관하게, 다들 이 실무평가 경험 자체가 어디서든 적용될 자양분이 된다고들 합니다.
폭주기관차 같던 이틀간의 실무평가를 끝내고,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는 동안 아무리 돌이켜봐도 ‘그래도 이건 잘했어’ 할 만한 게 없더군요. 그럼에도 저는 꿈같은 합격통보를 받았습니다. 미리 상상해두었던 합격 세리머니가 기억나지 않았을 만큼 짜릿했습니다. 달콤한 합격 너머에는 정성스런 교육기간도 준비되어있고, 많은 선배님들의 환영과 출퇴근의 소속감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입사 후엔 6개월의 수습기간이 주어지는데, 사실 PD직군에겐 수습의 의미가 크게 없습니다. 팀 배치가 끝나면 곧장 한명의 PD로서의 역할이 주어지고, 책임감과 성취감이 번갈아 밀려들기를 반복합니다. 기술적 성장은 체계적인 수업을 거치지 않고, 내면적 성장은 억지로 강요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PD라는 직업의 매력이자 무서운 지점이지요. 즐기며 성장할지, 안주하며 도태될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세계. PD라는 이름에, 방송국에 소속했음에 만족하지 말고 끊임없이 스스로 긴장감을 만들며 살아야 한다는 것. ‘젠틀맨’과 ‘먹거리 X파일’에서의 짤막한 경험 속에서 얻은 교훈입니다.
“유도에서 이기는 놈이 누군지 알아? 잡고 흔들 때 뻣뻣하게 버티는 놈이 아니라, 리듬을 타고 출렁거릴 줄 아는 놈이야.”
드라마 ‘태릉선수촌’의 유도선수 홍민기의 대사입니다. PD도 늘 이기기 위해 사는 것 같습니다. 경쟁프로그램의 시청률,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 밀려드는 피로, 자기 프로그램에 대한 욕심 등 싸워 이겨야 할 대상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 반복되는 싸움을 견디기 위해선 홍민기의 ‘출렁거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뻣뻣한 완벽함보단, 나를 보여준다는 유연한 ‘출렁거림’으로 길고 피로한 과정을 견디시기 바랍니다. |
[출처] 동아미디어그룹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