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들어줄 상대방이 있기 때문이다.

 

▲ 한상헌 아나운서

 

 

“다행이다…” 합격자 발표의 순간, 내 수험번호가 채용 홈페이지의 화면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기쁨의 환호성보다는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습니다. 
저는 다른 지원자들보다 조금 뒤 늦게 아나운서로의 꿈을 키워왔습니다. 아나운서라는 진로를 택했을 때 이미 제 나이는 서른이었고 또 결혼까지 해서 한 가정을 책임져야만 하는 가장의 입장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제 상황 때문에 더욱 합격자 발표의 순간이 제게는 안도의 순간이 아니었나 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번 공채를 통해서 제가 가장 많이 그리고 크게 배운 점이 있다면 바로 ‘역지사지’라는, 모두들 알고 있는 바로 그 진리입니다. 결국 시험의 모든 과정은 내가 보여주고 싶은 ‘나’가 아니라 면접관들, 좀 더 자세하게는 앞으로 함께 일하게 될 선배님들이 보는 ‘나’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공채 시험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이 일순 수동적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방송인, 특히나 시청자 여러분을 가장 앞에서 만나게 되는 아나운서 지원자라면 꼭 한번 고민해봐야 할 문제 인 것 같습니다. 내 자신이 생각하는 ‘나’와 시청자가 바라보는 ‘나’에 대해서…

 

정기공채 아나운서 분야의 카메라테스트의 경우 개개인에게 주어진 시간은 20~30여초 남짓 밖에 없습니다. 그 시간동안 자신의 수험번호와 주어진 원고를 낭독하면 나에 대한 평가는 끝나 버리는 것이지요. 그리고 전체 지원자 중 소수만이 이 관문을 통과하기 때문에 카메라테스트야 말로 가장 통과하기 어렵고 동시에 준비하기도 어려운 과정이라고 많은 지원자들이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면접관들도 제한된 시간 안에 수백, 수천의 지원자를 평가해야만 하기 때문에 역시나 어렵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짧은 시간에 제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감과 여유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더욱 또박또박 원고를 읽고 그리고 듣는 사람의 주의를 끌 정도로 문장 간 의미 간 여유를 많이 둔 것이 카메라테스트 통과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악명 높은 2차 필기시험. 가장 어렵다는 KBS의 필기시험 역시 저는 제 중심보다는 읽는 사람을 중심으로 준비했습니다. 미려하고 어려운 글로 독자를 유혹하기 보다는 솔직하고 담백한 글로 이해하기 쉬운 글을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욱, 주어진 논제나 주제에 대해서 명확하게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동시에 중문이나 복문을 최대한 줄여 의미가 정확하게 전달되는 글을 쓰려 노력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진실한 이야기에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는 믿음으로, 꾸며낸 이야기보다는 제가 직접 경험한 나만의 이야기를 전달하려 했습니다.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이번 3차 시험은 여러 과정으로 복잡하게 이뤄졌습니다. 영어 면접과 두 번의 심층 면접. 아침에 집합에서 늦은 오후에 끝난 강행군이었습니다. 영어 면접같은 경우에는 욕심을 버린 것이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낸 것 같습니다. 최대한 편안하게 대화하려 했고 제 얘기를 전달하면서 상대방의 얘기도 이끌어 내려 했습니다. 면접이 아닌 ‘대화’를 한 것이 좋은 평가를 만들어 냈다고 생각합니다. 너무나도 긴장되는 심층 면접, 내 앞에는 그 동안 TV로만 봬 왔던 쟁쟁한 선배님들이 나를 주시하며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그 어려운 순간에 긴장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저 역시도 웃으려 노력하는 입이 떨려올 정도로 경직되고 긴장됐습니다. 이대로는 면접을 망치겠다고 생각한 저는 모든 것을 잊고 최대한 솔직하게 답변하는 것을 최선의 목표로 잡았습니다. 너무 솔직한 답변에 면접관이 당황하기도 했지만, 차분히 제 자신을 알기 쉽게 설명해 드리려 노력했습니다. 결국 내가 면접에 관심이 있는 것 보다 더 면접관은 지원자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상대방에게 내 자신을 친절하게 설명하는 것 역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관문인 4차 최종면접.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가장 애매한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다른 면접 과정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가장 정답이 없는 면접이 최종면접이 아닐까 합니다. 전 최종면접에 이미 합격했다는 마음으로 들어갔습니다. 신입사원으로서 임원진 조금 더 과장해서 생각하면 大선배님들을 만나 뵙는다는 마음으로 되도록 편안한 마음으로 면접에 임했습니다. 그리고 신입사원다운 패기와 당당함을, 자심감을 보여드리려고 노력했습니다.
 

진정한 공영방송의 아나운서로서의 첫 발을 떼게 되었습니다. 제가 간절히 바랐던 KBS의 아나운서… 채용과정에서 배웠던 생각들, 그 느낌들 잊지 않고 지켜나가겠습니다. 가장 먼저 시청자를 배려하는, ’나’보다 더 훌륭한 ‘우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출처] KBS 아나운서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