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구름 잡는 얘기 같지만, 위 단어는 제가 ‘동아일보’라는 공간에 흠뻑 매달려 있을 때 마음속으로 되뇌었던 원칙입니다. 저는 '동아일보'를 위한 깃털이 뭔지 골라보기엔 이미 너무 늦었던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X)’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온)’ 지원자였거든요. 각종 언론사 인턴 출신, 로스쿨 출신, 현직 방송인 출신, 아니면 최소한 1~2년은 쟁여 왔을 것 같은 필사 노트를 지닌 사람들…. 제가 동아일보 공고를 처음 접한 후부터 필기, 면접, 실무평가, 합숙평가를 거치며 지켜본 지원자들은 정말이지 대단해 보였습니다(물론 저 중에는 합격한 제 동기들도 포함됩니다). 저는 사실 지난해 여름까지 온갖 고민과 우여곡절에 사로잡혀 있었고, 어느 날 우연히 눈에 들어왔던 동아일보 1면의 수습 공채 사고를 보고 처음 기자를 생각했던 지원자였습니다. 사고를 보고 ‘여기라면 대한민국 사회 어디든 굴러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갑자기 원서를 넣은 날 저는 밤새워 자기소개서를 썼습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 때부터 채용 과정이 내내 즐거웠습니다. 작문 시험 때는 얼굴도 모르는 독자가 읽을 내 소설을 써보는 기분이었고, 르포 과제인 ‘강남스타일의 새벽’을 취재하기 위해 꽃시장에 들어갔을 때는 아침 TV프로그램 리포터라도 된 양 신이 났습니다. 또 학교 도서관에서 빌린 ‘기자가 되는 법’, ‘기사작성법’류의 책들을 쌓아놓고 손으로 짚어가며 읽었습니다. 합숙평가를 거치며 지원자들과, 선배들과 밤을 지샐 때 저는 행복했습니다. 합격 여부를 떠나 이 곳엔 멋진 사람들이 정말 많고, 저는 진심으로 이 일을 좋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긴긴 방황 끝에 저는 제 자리를 찾아낸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듣보잡’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결국 그것이 저의 무기였다고 생각합니다. 합숙평가 기간 심층 면접에서 한 선배가 제 프로필을 들춰보시다가 “곽도영 씨는 이것저것 해 보다가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어서 기자하겠다는 거 아닌가?”라고 물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질문은 저를 한 순간 휘청거리게 했지만, 저는 마음을 다잡고 차분히 대답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다른 지원자들보다 기자를 희망했던 기간도 짧고 준비도 부족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모든 과정을 거쳐 오면서 이곳의 누구 못지않게 감사했고, 행복했습니다”라고. 그것이 제 ‘진짜’ 모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채용 과정 중 만난 사람들에게 호기심이 있었고, 저와 같이 질풍노도의 20대를 보냈을 그들을 알고 싶었고, 매일 아침 이름을 걸고 세상에 기사를 내보내는 선배들의 철학이 궁금했습니다. 제겐 거창한 소명 의식이나 수년 간의 치밀한 준비는 없었지만, 동아일보에게 저를 속이지 않았습니다. 가면은 언제든 벗겨지기 마련이니까요.
저는 그토록 바라던 사회부 사건팀 기자가 됐습니다. 정말 다양한 사란들을 취재 현장에서 만나다 보면, 그 중 몇몇은 제게 이야기를 들려주다 “이렇게 돌아보니 정말 좋군요”라는 말을 합니다. 이제 곧 후배로 뵐 여러분 덕분에, 숨 가쁜 일상에서 지난 시간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습니다. 아직 넘어지고 깨지지만, 지금도 저는 숨기지 않고 이 일을 좋아합니다. 더 많은 이야기는 접어두고, 곧 현장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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