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의 역할은 대상에 색을 입히는 것이다. 밝기에 따라 대상의 모습과 느낌은 판이하게 달라진다. 아무리 익숙한 풍경이나 인물이라 할지라도 조명은 충분히 그것을 낯설게 만들 수 있다. 장대전 감독은 이러한 조명의 넓은 스펙트럼을 구현하고자 지금도 꾸준히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작업 현장에서 눈을 감는 그날까지 조명은 자신의 천직이라 믿는 장대전 감독. 그와의 만남은 특별했다.
그를 만나러 간 날, 장대전 감독은 카메라 앵글에 맞춰 조명의 각도와 밝기를 조절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세트 주위를 돌아다니며 설치된 조명을 일일이 점검했다. 특히 그 날은 15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하는 윤정희와 인터뷰가 계획된 날이라 그런지, 장 감독은 오랜만에 돌아오는 초로의 배우가 자신의 브라운관 모습에 실망하지 않도록 신경 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카메라의 위치와 앵글이 다시 맞춰질 때 마다 조명도 같이 움직이기 때문에 매번 똑같은 작업이 반복됐지만 싫은 내색 하나 없이 그는 분주히 움직였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현장’의 매력
장대전 감독은 KBS교양프로그램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조명감독이다. <일요스페셜> <한 밤의 문화산책> <디지털 미술관> 등 KBS의 굵직굵직한 교양프로그램 조명을 담당했다. 그래서일까? 중후한 외모와 수수한 옷차림, 맑은 눈빛에서 식자의 풍모가 느껴진다.
“주로 교양프로그램을 담당하다 보니, 사회의 제일 낮은 계층부터, 청와대의 높은 분들까지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게 되요. 그들의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나, 사회의 이슈와 맹점, 예술의 고귀한 가치까지 경험하는 바가 넓고 크죠. 그 동안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을 이러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간접적으로 깨닫게 되니까요. 그래서인지 좀처럼 드라마나 영화의 조명 쪽으로 외도를 못하게 되나 봐요.”
장 감독은 지난 1994년 첫 방영을 시작한 <일요스페셜>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교양프로그램 조명일과 인연을 맺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가 교양 쪽 조명일을 담당한 것은 아니다. 그에게 조명의 매력을 알려준 것 영화였다. 우연히 영화 쪽 조명을 담당하고 있던 후배가 도움을 요청한 것이었다.
“갓 20살 무렵이었죠. 특별히 학업의 꿈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딱히 하고 싶은 일도 없었습니다. 나름 엄청난 방황의 시기를 겪고 있었다고나 할까요. 그러다 아는 후배의 요청으로 영화 조명 스태프로 일하게 됐습니다. 저에게는 인생의 흐름을 바꾼 계기였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조명감독의 카리스마 넘치는 지시에 따라 조명 장비들이 설치되고 사라지는 모습은 당시 그에게 다른 신세계가 펼쳐지는 듯 했다고. 무엇보다 조명감독의 열정이 그의 뇌리에 깊은 자국을 남겼다. 단순히 빛을 밝히는 일이었지만, 촬영 슛이 들어가는 순간 조명 아래 놓인 배우들과 주위 사물들이 전혀 다르게 보이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며 비로소 꿈을 꿨다. 조명감독이 되겠다고.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어요. 보시다시피 체격도 왜소한데, 조명장비가 좀 무겁습니까? 어떤 장비는 제 무게보다 더 나가니, 조명일 배우는 신입 땐 온 몸에 파스 붙이는 게 일이었죠. 지금이야 몸에 익숙해져 별 감흥이 없지만 당시에는 조명일도 배우기 전에 몸부터 지치기 일쑤였어요. 오직 이를 악물고 참는 수밖에 없었죠. 방송이나 영화 일이 그렇듯 대부분은 짐을 옮기고 설치하는데 일의 팔 할을 다 쏟습니다. 나머지 2할 정도가 이를 테면 조명을 디자인하는 일이죠. 그만큼 배우기도 어려웠어요”
고생의 흔적 위에 스며든 조명 세계
딱딱한 굳은살로 뒤덮인 그의 손. 밤낮 가리지 않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때로는 오지의 마을에서 조명장비를 만지다 보니, 자연스레 얻는 영광의 상처다. 때로는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 법도 한데 왜 그는 조명일을 그만두지 못한 걸까?
“모든 일이 그렇지만 처음에는 힘들다가도 막상 일이 마무리됐을 때 찾아오는 묘한 희열은 좀처럼 조명일을 그만둘 수 없게 만들었어요. 언젠가 목포와 제주도 사이에 있는 여서도라는 섬에 촬영을 가게 됐는데, 워낙 오지에 있는 섬이라 촬영이 순탄치 않았어요. 먹는 것도 그렇고, 2~3일에 한 번씩 밖에 배가 뜨지 않아 여러 가지 곤란한 상황에 직면하기도 했고요. 근데 막상 촬영에 들어 가면서 섬을 둘러보니 이렇게 맑고 깨끗한 자연과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죠, 어느 순간 불만이 눈 녹듯 사라졌어요.”
그가 본격적으로 교양프로그램의 야외조명을 담당하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그의 친구들이 영화나 드라마, 무대, CF 조명 분야로 막 자리를 옮길 때 그는 차량에 조명을 싣고 ‘날 것’의 아름다움을 찾아 종횡 무진했다. 힘든 일을 사서한다는 친구들의 핀잔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야외 조명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 세트가 갖춰진 현장보다, 자연광이 그대로 드러나고, 사람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곳이 더 좋았기 때문이다.
“사실 제가 담당하는 야외 조명은 다른 조명분야보다 천시되는 것은 맞습니다. 영화 혹은 CF는 조명스태프도 많고, 조명이 차지하는 비중도 굉장히 커요. 특히 CF 같은 경우는 조명이 제대로 설치되지 않으면 촬영자체가 힘든 일이니까요. 그에 비해 제가 담당하는 방송프로그램 야외 조명은 준비할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일단 현장의 조명환경을 빨리 파악한 다음 조명을 어느 정도 쓸지 빨리 판단해야 해요. 방송프로그램 예산이 정해져 있어 시간이 초과되면 제작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직업병이 하나 있어요. 어딜 가든 콘센트부터 찾게 됩니다. 일단은 전원이 들어와야 조명을 제대로 설치할 수 있으니 어쩌면 제가 하는 일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이죠(웃음). 어떨 때는 전봇대에서 직접 전원을 따기도 해요.”
돌발 변수들이 많이 생기는 야외촬영은 그만큼 긴장을 늦출 수 없다. 항시 장비를 점검하고 빠진 부분이 없도록 신경 써야 한다. 특히 밤 씬을 찍는 날은 긴장이 배가 된다. 밤은 그야말로 설치된 조명에 기대어 찍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밤 씬은 굉장히 힘든 작업이에요. 그래서 밤 씬을 잘 연출하는 감독이야말로 훌륭한 조명감독이라 보면 됩니다. 밤은 낮과 달리 조명감독이 빛을 만들어 내야 하기 때문에 카메라 감독과 끊임 없이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조명이 대상의 느낌을 결정하니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태양을 쫓아가야 하는 낮 씬보다 달을 쫓아가는 밤 씬을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꾸미지 않는 그대로를 보여준다고 해야 할까요. 인물이나 사물 모두 밤에는 맨 얼굴이 드러나서 더 솔직한 모습을 기대할 수 있어요. 가령 영화 ‘취화선’에서 보여주는 밤의 정취는 한국의 미를 잘 드러내 줍니다. 은은한 조명 아래서 수줍은 듯 미소 짓는 풍경 같은 거라고나 할까요”
열악한 작업 현실, 그러나 길은 있다
야외조명이 힘든 일이라고 하면서도 좀처럼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지워지지 않는다. 천직이라는 말이 장감독을 빗대어 하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살아온 인생의 반을 조명에 몸담은 그. 그에게 조명은 과연 무엇일까?
“아직 그걸 말할 단계는 아닌 것 같아요. 20년, 30년 조명에 몸담는 분들도 많은데. 저는 너무 부족합니다. 다만 조명을 생각할 때면 안타까운 부분이 많아요. 조명일을 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너무 열악해서, 선뜻 후배들을 두기가 무서운 부분도 있고요. 감당하기 버거운 부분을 강요하는 느낌도 듭니다. 하지만 지금껏 좋아하는 일을 향해 달려오며 느끼는 것이지만, 길은 있습니다. 너무 안정적으로 쉽게 가려다 보면 오히려 놓치는 부분이 많죠. 조명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비록 초반에는 힘들겠지만 삶의 지표로 삼고 나아간다면, 꼭 뜻한 바를 성취할 수 있을 거예요, 저 또한 숱한 갈등을 겪으며 이 자리에 왔고 어느덧 조명이 저의 천직이 됐습니다. 그저 바람이 있다면 현장에서 눈을 감는 거죠.”
현재 방송이나 영화 쪽 모두 스태프 대우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거의 대부분이 계약직으로 낮은 임금에 시달리다 보니, 오래 함께 일을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 열악한 현실에 좌절하고 꿈을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고 그는 몹시 안타까워했다. 세상은 발전하는데 점점 냉혹해지는 조명 현실이 씁쓸할 뿐이다. 그러나 장감독의 눈빛에서는 여전히 희망이 보인다.
“앞으로 조명은 점점 세분화될 것입니다. 방송, 영화 할 것 없이, 전시, 연극, 무대 등등 아직 조명이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니까요. 또한 세분화된 교육과정도 속속 생기는 추세라 옛날처럼 현장에서 어깨너머로 배우는 일은 없을 겁니다. 물론 조명은 이론보다 현장을 체험하는 게 중요하죠. 그러나 좀더 숙련된 기술을 빠른 시간 내 배워 활용할 수 있게 될 거예요. 후배들이 미리부터 겁먹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길에는 안내하는 표지판은 있지만 누구도 그 길이 옳다는 장담하지 못합니다. 그저 자신이 선택한 길이 옳다는 걸 증명하면 됩니다. 조명은 당신에게 충분히 매력적이며 가능성이 있는 세계를 보여줄 테니, 염려 말고 확신을 갖고 도전했으면 해요.”
장대전 감독은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다시 현장으로 돌아갔다. 현장에 있어야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낀다는 그다.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여전히 분주하지만 조명을 만지고 촬영을 지켜보는 일은 일이기 이전에 삶에서 놓치고 싶지 않은 부분이라고. 그는 다양한 사람들이 부딪히며 만들어가는 희로애락은 마약과 같아 끊기 힘들다고 고백한다. 그의 바람처럼 환갑이 지나서도 현장에서 조명을 담당하고 있을 그를 상상하며, 한국의 대표적 조명감독으로 이름을 남기길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