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11년 유럽 재정위기의 발원지인 그리스에서 ‘592유로 세대’란 시트콤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592유로는 그리스 정부가 정한 25세 이하 청년층 최저임금이다. 한국의 20대 비정규직을 일컫는 88만원 세대와 비슷한 맥락이다. 우연히도 592유로는 지난해 말 환율로 88만3000원이다. ‘592유로 세대’는 일자리가 없어 고단한 청춘을 그린다. 시트콤 작가 람브로스 피스피스는 “592세대가 곧 300유로 세대로 전락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 그리스에서 시작된 위기는 표면적으로 재정 문제다. 정부가 나라의 곳간 관리를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근본적 요인은 청년실업에 뿌리를 두고 있다. 복지제도를 제대로 운용하려면 지출을 뒷받침할 재원을 지속적으로 충당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재원은 새로 취업하는 젊은 세대가 감당할 수밖에 없다. 고용이 끊임없이 일어나야 하는 이유다. 그리스는 애초부터 이런 선순환구조가 깨졌다.

 

■ 그리스의 청년실업률은 재정위기가 불거지기 전부터 유럽연합(EU) 내 1위였다. 2005년 8월 기준 그리스의 15~24세 실업률은 26.8%에 달했다. EU 평균은 16.4%였다. 이런 좌절에서 촉발된 폭력시위는 2008년 12월 수도 아테네를 마비시켰다. 지난해 전 세계를 뒤흔든 점령(Occupy) 시위의 원조인 셈이다.

 

■ 그리스 정부가 실업 문제에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방향이 완전히 빗나갔다. 그리스는 청년실업을 예산으로 막으려 했다. 공무원과 공기업 직원을 늘렸다. 당장 효과가 나긴 했지만 후유증이 컸다. 취업자 4명 중 한 명이 공공기관 근로자였고 인건비 부담은 정부 재정을 옥죄었다.

 

■ ‘파켈라키(작은 봉투)’로 상징되는 부패도 청년층의 좌절을 부추겼다. 부패로 인해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무너지고, 연줄이 없으면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려운 게 그리스였다. 대학원까지의 무상교육을 통해 길러 낸 인재들은 해외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갔다. 재정위기는 이런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2009년 그리스의 경제성장률은 -2%, 2010년은 -4.5%였다. 경제가 뒷걸음질치면서 가뜩이나 부족한 일자리가 더 줄었다. 최근 그리스의 청년실업률은 40%대로 치솟았다. 그리스에선 실업자가 늘면서 정부 지출 부담(실업수당)이 증가하는 이중의 부담이 생겼다. 유럽 재정위기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일자리 창출을 통한 세수 확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