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해, 중앙일보 시험 보는 언론고시생들은 '갈 데까지 간' 분들이 많지 않을까 싶네요. 연속되는 불합격 소식, '날 떨어뜨리면 그 언론사가 후회할거야'라는 처음의 자신감은 온 데 간 데 없고, 이대로 꿈을 꺾어야 하나…싶어 대기업·은행 공채 소식을 뒤적거리고, 부모님 얼굴 뵙기 죄송스럽고. 급기야 대인기피증에 식욕부진, 우울증까지. 제가 그랬거든요. -.-
2년에 걸친 언론사 시험, 15번의 낙방. 6개월 회사생활로 모았던 돈도 다 떨어져 갈 때쯤. 그 때 중앙일보 수습기사 모집 공고가 떴습니다. 그 바로 전해 시험서 떨어지고 '두 번 다시 중앙일보는 읽지 않겠다'고 이를 갈게 만들었던 회사였지만.. 어쩝니까. 절박한 건 중앙이 아니라 전데.
그런데 막상 원서를 쓰려 하니 또 상당히 짜증이 나더이다. 자기소개서는 물론이고 '기자도전장'을 A4 네 장에 걸쳐 써야하니 말이죠. 다른 언론사는 전에 썼던 자기소개서에 회사 이름만 바꾸면 또 쓸 수 있지만, 중앙은 그렇지가 않거든요. 전 그냥 평범한 형식으로, 대신 구체적인 경험들을 예로 들어가며 썼더랬죠. 주워 들은 얘기에 따르면 중앙일보의 경우 서류에서는 토익 성적이나 학점보다는 기자도전장을 중요한 평가항목으로 삼는다네요. (실제 제 동기들의 토익점수나 학점을 보면 어느 정도 알 수 있죠. ^^) 중앙 서류심사가 발표 나면 '난 **대학, 토익 ***점, 학점 ***인데 왜 내가 서류에서 물먹었냐'고 억울해하는 분들 꼭 나옵니다. '기자도전장' 신경 많이 쓰세요. 특히 중앙은 서류서 엄청 많이 자르기로 유명하니 말이죠.
서류를 통과하니 작문과 국어시험이 이어집니다. (아, 참고로 중앙일보 시험은 평가자들이 각 전형 단계마다 바뀌기 때문에, 한 단계의 성적이 그 다음 시험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작년에도 서류심사에서 '비빔밥'을 소재로 한 아주 맛깔난 글로 주목 받았던 분이 필기시험에서는 떨어졌답니다.) 중앙의 작문시험은 주제는 참 독특한 게 많죠. 지난 번엔 신문을 하나씩 나눠주고서 '신문 속 사진을 하나 골라 그걸 주제로 자유롭게 작문하라'더군요. 그 전 시험에선 '고이즈미와 명성황후의 가상 대담'이 주제였고, 몇 해 전엔 음악을 틀어주고서 그 음악을 가지고 자유롭게 글을 쓰라고도 했다죠. 주제도 형식도 모두 새롭다면 좋겠지만, 그렇게 시간적 여유가 많은 게 아니어서 저는 수필 형식으로 글을 썼습니다. 나름대로는 중앙일보의 '분수대'식의, 가벼운 에피소드로 시작하되 끝에는 여운을 남기는 글쓰기를 시도했죠. 잠깐, 혹시 지금 '분수대'가 뭔지 모르겠다는 분들 계시나요? 중앙의 '오피니언'면 한번 보시죠. 작문 다음의 국어시험은 상당히 어려워요. 일반적인 언론사 국어시험에 '수능 언어영역'식 문제가 합쳐진 형태인데… 정말 정신 없이 찍었죠. 작문과 국어시험을 합산하여 정한 필기 합격자 18명에 제가 끼었습니다.
시험의 제 3단계, 현장취재와 합숙평가. 현장취재 땐 첫날은 '취재 능력'을 시험할만한 주제가, 둘째날은 '글발'을 보는 주제가 주어집니다. 작년엔 '청계천 현장 르포'와 '마켓'이 주제였죠. 첫날 아침, 청계천에 떨궈졌을 때 그 막막함이란. 점심도 못먹고 다섯시간 동안 꼬박 청계천 일대를 헤매고 들어와 기사를 쓰려니 머리 속이 텅 비었더라고요. 취재한 걸 정리해서 '야마(주제)'를 잡아 글을 써야 하는데,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었으니 그럴 수밖에요. 허둥지둥… 그야말로 형편없는 글을 쓰고 나왔습니다. 다음날은 일부러 취재를 빨리 끝내고 일찌감치 시험장에 와서 글의 개요를 잡았죠. 덕분에 쉽게 글이 풀려 30분만에 기사 작성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시간배분, 진짜 중요하다니까요. 현장취재를 한 수험생 모두 1박 2일의 합숙평가에 들어갔죠. 합숙평가에선 자기소개·토론·작문·인터뷰·모의편집회의·등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술자리였답니다. 합숙 첫날 밤에 6명의 평가위원들과 수험생들이 모여 술을 마시는데, 폭탄주가 순식간에 서너잔 돌더군요. 엄청 취했죠. 문제는 다음날 아침까지 술이 안 깨더라는 겁니다. 평가위원이 질문을 하는데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아먹지 못해서 헤매고. 그나마 전 양호했지, 수험생 하나는 술 마시고 사고 치는 바람에 심각한 위기에 처했었죠. 합숙 기간 동안은 계속 평가가 진행 중이라는 점, 절대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합숙이 끝나면 평가위원들이 대략의 등수를 정한다지만 최종면접이란 쉽지 않은 관문이 남았습니다. 몇명을 뽑을지가 정해짐은 물론이고 순위가 뒤바뀔 여지도 있는 중요한 최종 단계죠. 3인 1조가 되어 면접장에 들어가서 한 20분 면접을 하던가. 맨 처음에 자기소개를 하라고 하데요. 그래서 "작년에 절 안 뽑은 걸 후회하게 만들기 위해 다시 왔다"고 했죠. 몇 분이 피식 웃으시더군요. 당당하게, 절대 쫄지 말 것. 면접 경험 다수, 언론고시 8단이 전하는 최선의 면접 자셉니다. ^^
전 그렇게 중앙일보에 들어왔습니다. 시험을 준비하는 분들께 조금이라도 더 정보를 드리려 하다 보니 아주 두서 없는 합격수기가 됐네요. 입사 후에 겪은 많은 얘기들이 또 있지만, 그건 41기 수습기자로 들어오는 분들과 나눌 수 있겠죠.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몇달이 지나 "선배, 그 합격수기 너무 이상했어요"라고 저에게 한마디 해줄, 그날을 지금부터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