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에 우리말을 입히는 사람들. 외화번역작가들이다. 이 직업은 62년 KBS TV가 처음 외화 를 내보내면서 등장했다. 


현재 이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은 1,000여명. 70% 이상이 여성이지만 최근 2∼3년 동안 어학실력이 뛰어난 20대 젊은이들이 대거 진출, 새로운 전문 프리랜서 집단을 형성하고 있다. 

외화 번역작가에게 요구되는 1차적인 요건은 외국어 실력이다. 말하고 쓰는 데 막힘이 없어 야 한다. 대본에도 없는 대사를 그대로 옮겨 적을 만한 수준이어야 하는 것. 

그러나 외화번역은 직역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똑같은 어휘라도 알아 듣기 쉽고 읽기 편하 게 바꿔줘야 한다. 문학작품일 경우 가슴 뭉클한 감동을 줄 수 있는 그런 예술적인 감수성도 필요하다. 외화번역 또한 작가정신이 깃든 창작의 세계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방송을 위한 더빙번역은 감탄사 「아」 「어」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필름 속 영화배우와 성 우들이 호흡을 척척 맞출 수 있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극장과 케이블TV, 비디오물을 위한 자막번역가는 특히 작문실력이 뛰어 나야 한다. 5∼8초 동안 흐르는 장면에 2줄의 대사만이 허용되기 때문. 한줄에 13자씩 26자 안에서 더빙물의 대사를 절반 이하로 압축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극장용 영화는 이보다 더하다. 장면당 한 줄에 7자씩 14자 이내에서 소화하려니 대화내용을 글로 옮긴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엄청난 또다른 창작이 있을 수밖에 없다. 유행어를 섞 는 것이 의미를 전달하는 데 훨씬 효과가 있다. 그래서 극장용 영화가 순수한 우리말을 오염 시키는 「오역의 주범」으로 불린다. 

이들의 수입은 경력과 분야에 따라 들쭉날쭉하다. 방송의 경우 통상 10 분당 7만원선. 주말 시리즈물을 맡으면 월평균 80만원 정도를 벌게 된다. 반면 비디오물이나 케이블TV쪽은 이 의 절반수준인 35만원선. 극장용 영화는 필름 수입가격의 손톱 만큼도 안되는 50만원선에 서 거래되고 있다. 

이들은 「영어공부를 하면서 외화번역을 한다」는 사람치고 끝까지 버텨 낸 작가는 거의 없 다고 말한다. 실력으로 승부하는 프리랜서의 세계이고 사명감과 책임감이 수반되는 전문직 종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전문성이나 학문적인 깊이를 요구하는 외화가 많이 등장하고 있어 자료조사를 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자료조사를 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는 수사물도 마찬가지. 범행에 얽힌 용어는 물론 저속한 표현이나 욕설이 많아 순화된 우리말로 바꾸는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나마 「빌 어먹을」 「망할놈의 세상」이 허가된(?) 욕이다. 고의적으로 오역을 해야 하는 경우다. 

외화는 크게 3단계를 거쳐 우리말로 번역된다. 우선 외국어로 된 영화를 3회 정도 있는 그대 로 감상한다. 작품 전체의 흐름과 연출의도를 파악하고 줄거리를 잡는다. 그 다음 주인공이나 각 배우들의 성격을 분석한다. 

극중 인물들이 반말을 하는 사이인지 존칭을 쓰는 관계인지 파악해야 번역할 때 쉽다. 마지막 으로 외국어 대본을 놓고 말을 끊어가며 우리말로 번역한다. 방송용 더빙번역일 경우 특히 애 를 먹는 것이 화면의 주인공과 대사를 맞추는 일. 입모양에 맞게 우리말의 고저를 살리고, 말 하는 속도 역시 한 순간도 틀려서는 안된다. 

외화번역가가 되기 위해선 외국어 실력이 수준급이어야 한다. 의사소통에 막힘이 없고 그 나 라의 전통문화까지 이해할 정도가 돼야 하는 것. 하지만 외국어만 잘한다고 번역가가 될 수는 없다. 작문실력이 뛰어나야 한다. 창의력과 예술적인 감수성 또한 필요하다. 직역만 하면 영 화가 재미없기 때문이다. 

각 방송사에서 마련하고 있는 영상사업단이나 문화센터, 아카데미 등을 통해 번역작가 과정 을 밟는 것이 유리하다. 6개월 과정이며 1년에 두차례 각 사에서 40여명씩 선발하고 있다. 5 년 정도 돼야 영화 한 편을 제대로 번역하는 수준에 이른다.